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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가요대전, KBS 가요대축제, MBC 가요대제전

연말 시상식과 가요축제를 보면서 문득 "예전 가요계의 모습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변진섭, 이승철, 박남정, 현철, 주현미 vs 소녀시대, 다비치, 애프터스쿨, 카라, 브아걸, 티아라

 

1989년의 최고 인기가수들과 2009년을 대표하는 걸그룹들을 놓고 보니 격세지감이라 느낍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변했을 가요계도 많은 일들이 있었겠죠?

과연 20년 전의 가수들은 어떤 노래들을 불렀을까요?
1989년의 가요판은 누가 주도했을까요?
그 당시와 지금의 가요계 분위기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 양쪽의 공통점은 각각 1989년, 2009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것. 그리고 <소녀시대>란 곡을 불렀다는 것

 
 

'남자가수-오빠부대' vs '걸그룹- 삼촌팬'

 

2009년 가요계의 가장 큰 특징은 '걸그룹의 강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과 몇 년전까지 '아이돌 스타'라고하면 미소년 그룹와 오빠부대를 떠올렸지만 2007년에 탄생한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걸그룹의 인기를 주도해 나간 후, 걸그룹은 유래 없는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원더걸스는 <노바디>를 앞세워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 100위에 오르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걸그룹의 성장에는 삼촌팬들을 위시한 남성팬들의 증가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걸 느끼게 해 준 대표적인 사례가 소녀시대의 <Gee>입니다. 공개녹화장에서 소녀시대가 이 노래를 부르는 중 따라부르는 남자팬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여러분들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Gee Gee Gee Gee~ Baby Baby Baby~"

 

오빠부대의 소프라노급 환호성과는 다른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군대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이 광경은 이제 음악방송 녹화장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 1989년 가요계를 주도했던 3인방. 변진섭, 이승철, 박남정


2009년에 걸그룹이 가요계를 휩쓸었다면 20년 전의 대중음악은 어땠을까요? 1989년의 가요계 판도는 올해의 양상과 정반대였습니다. 양수경, 이선희, 이상은 등 여자 가수들이 있었지만, 남자 가수들의 위세가 대단했죠.

1989년의 초반을 장식한 것은 변진섭이었습니다.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를 히트 치며 가요계를 주도해 나갔죠. 그 당시 경쟁곡은 조성모와 이승환의 리메이크 하기도 했던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었습니다. 박남정의 기역자 춤으로 유명한 <널 그리며>와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도 인기를 끌었죠.

5월 전후로부터 이승철의 대활약이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 최다 음반 판매고를 올린 그는 <마지막 나의 모습>,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앞세워서 연중 흥행 돌풍을 이어갔습니다. 마약 스캔들이 터지고 방송 불가 등의 핸디캡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조용필도 10집을 발표했으나 역시 스캔들이 터지면서 칩거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것이 가요계의 군웅할거시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신인 가수들이 치고 나갈 틈새가 더 커졌기 때문이죠.


▲ 조용필(좌)이 스캔들로 주춤한 사이 <여름날의 추억>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이정석(우)


늦여름 이후로 이정석의 <여름날의 추억>,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가 크게 유행한 노래가 되었고, 이후 김흥국을 지금에까지 있게 해 준 최대히트곡 <호랑나비>가 후반기에 등장했습니다. 그의 호랑나비춤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죠. 

 
이렇게 남자가수들의 강세가 이어지는 데에는 오빠부대의 공로가 컸습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원조격인 조용필, 이승철의 팬클럽이 여전히 건재한 것을 보면 당시 그들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메세지, 인터넷 카페가 없던 시기에 팬레터는 가수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죠



'발라드' vs '댄스음악'

 

2009년 가요계의 뒤흔든 장르는 댄스음악입니다.

 

걸그룹들이 펼치는 춤과 노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 걸그룹들은 단순히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영입 0순위의 고객들이죠. 그들이 보여주는 춤을 비롯한 다양한 장기는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아이돌 스타', '댄스음악', '걸그룹'으로의 획일화가 우려된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2000년대 이후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추이가 바뀐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 소녀시대, 원더걸스와 함께 올해 걸그룹의 강세를 말해주는 애프터스쿨, 티아라


이에 비해 1989년은 지금처럼 비디오형 가수보다는 오디오형 가수가 좀 더 강세였죠.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와 같이 춤-노래에 모두 능한 가수들도 있었지만, 발라드의 강세를 뒤집을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발라드 가수들이 인기를 끌면서 화보 촬영 등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높여갔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주류 매체가 되면서 시청각에 영향을 미쳤지만, 당시에는 TV 못지 않게 라디오가 강세였던 시기였죠. 일부 잡지에서는 작사가, 작곡가 등의 순위를 따로 올리기도 했었구요.


▲ 이선희, 이지연과 함께 1989년을 빛낸 여자가수들. 춤짱인 김완선, <DDD>의 김혜림, 탤런트 출신 가수 지예



 '솔로' vs '그룹'

1990년대 초중반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댄스음악을 대중음악의 주류로 끌어올린 시조격이었다면, HOT, 젝스키스 등의 남자아이돌 그룹은 본격적으로 정착화시킨 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9년부터 걸그룹의 강세가 눈에 띄는 가운데, 남성그룹에서 여성그룹으로의 이동이 있었을 뿐,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아이돌 댄스그룹'의 위세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물론 2000년대의 남녀 솔로가수들도 자기 영역을 구축하며 꾸준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의 대중음악 경향과 비교해본다면 상대적으로 그룹이 대세라고 하겠습니다.



▲ 인기스타 최수종과 <내 아픔 아시시는 당신께>를 부른 조하문은 처남-매부지간


이에 비해 1989년 무렵에는 그룹보다는 솔로에 집중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룹으로 가요 차트에 이름을 올린 가수라면 소방차, 무한궤도(신해철)였고, 얼마 후 그들도 해체의 수순을 밟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죠. 그리고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매니지먼트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룹보다는 솔로가 보다 이점이 있었습니다.

1989년의 대중가요는 양질에 있어서 본격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지던 때였는데, 이 시기가 지나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등장하여 가요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죠. 그러면서 솔로와 그룹의 형태도 좀 더 다양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룹에 따라서는 객원가수가 앨범의 타이틀 곡을 부르기도 했죠. 

1989년에는 이전의 시대까지 지배해오던 판에서 벗어나 신인급 솔로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가요계에 태풍이 되자 가요계 내에서도 양질의 발전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국민들이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문화적 욕구가 조금씩 꿈틀대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1989년과 1988년에 다크호스로 돌풍을 일으킨 주역 <호랑나비>의 김흥국과 <담다디>의 이상은


과거 연말 가요시상식을 떠올리며


1990년대 중반까지 연말 TV 가요대상은 시대 분위기에 비해 보수적이었습니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 출연빈도, 노래가 방송에 나간 회수 그리고 음반판매량에서도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주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곡이나 가수들이 연말 시상식에서는 외면 받은 측면이 있었죠.
 

특히 KBS는 좀 더 보수적인 경향을 띄었습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대상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죠. 그리고 KBS에서 댄스음악으로서 대상을 처음 수상한 곡은 1995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었고, 댄스그룹으로서 첫 가요대상은 1998년 <빛>을 부른 HOT였습니다.


▲ 이승환과 신해철은 헤어스타일 빼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네요


1990년대 초반까지 매주 방영된 가요프로그램과는 달리 연말 가요시상식에서는 트로트와 비트로트로 나뉘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그리고 트로트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어드밴티지가 있었습니다.

1989년에도 그러했습니다. 변진섭, 이정석, 이승철, 황치훈, 김흥국와 같은 가수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는 주현미가, KBS에서는 현철이 각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이승철은 후반기에 마약 사건이 터지면서 방송 출연에 타격을 받았죠.)


▲ 진행자로 유명했던 임백천은 <마음에 쓰는 편지>라는 곡을 불렀죠.
그는 이경규와 <일밤>을 같이 진행한 바도 있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속은 적도 있었죠. "얼레리꼴레리~"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트로트의 위상이 달라지고 가요계의 인기 주도층이 10~20대쪽으로 쏠리자, 트로트가 연말시상식에 설 자리가 매우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MBC의 경우에는 1998년부터 4년간 10대가수가요제를 30대 이하-이상을 나누어서 시상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가요시상식에 대한 과열 양상과 비난 여론이 일어나자 시상식은 폐지가 되고 가요축제 형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연말 가요시상식은 흥행성에 있어서 대중들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각종 시상식이 그 의미가 퇴색되어감에 따라 회의론도 커졌습니다. 상에 대한 기준이 일관되고 명확하지 않는 이상, 연말에 상을 놓고 겨루는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명분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연말 가요프로그램은 평소에 보았던 가수들의 재탕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이벤트와 실험을 통해 신선한 음악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건 1989년과 2009년의 가요계 분위기를 비교해봤는데,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데뷔 3년차 이하급의 신예 가수들이 가요계를 주도했다는 것이죠.


< 사진 출처 : 포토뮤직 >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펨께 2009.12.31 0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도 세대차인지 아시는 분은 조용필과 어디선가 들은 서태지씨 밖에 없는것 같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새해에는 더욱 행운이 깃드시기를 바랍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2.31 0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1989년은 저도 학생시절이죠.
      예전과 요즈음의 가요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Phoebe 2009.12.31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9년은 고등 학교 갓 졸업한 뽀송뽀송한 아가씨였어요.ㅎㅎㅎ
    옛날 분들 오랜만에 사진으로 보네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3. BlogIcon 반광선 2009.12.31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9년도..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ㅋㅋㅋㅋㅋㅋ

  4. BlogIcon 악랄가츠 2009.12.31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예요! ㅎㅎㅎㅎ
    당시에는 아이돌은 커녕, 그룹가수도 극소수였는데 ㅎㅎㅎ
    너무 어려서인지 기억이 날듯 말듯 해요! ㅎㅎㅎ

  5. 민君 2012.05.25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엄청 촌스럽네요 흥국이 아져씨도 젊고 89년이면 국민학이였네연 지금은 30대 아져씨 ... 나이가 드니 이 나이에 사랑 타령으로 가사가 떡칠된 노래 부르기도 거시기하고 이렇게 점점 노인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ㅋ

2009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지난 12일에 열렸습니다.

2009시즌 골든글러브 수상자 가운데
2000년대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들과 견줄 수 있는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2000년대 통틀어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요?

[ 2009년 골든글러브 수상자 vs  2000년대 각 포지션 최고 선수 ]

각 연도별 선수들은 다음과 같이 표기하겠습니다.
'2009년 김상현 = 09김상현'

 


투수 부문

이름

이닝

평균자책점

승패

탈삼진

WHIP

00임선동

195.1

3.46

18승 4패

174

1.22

02송진우

220.0

2.99

18승 7패

165

1.15

04배영수

189.2

2.61

17승 2패

144

1.25

06류현진

201.2

2.23

18승 6패

204

1.05

07리오스

234.2

2.07

22승 5패

147

1.06

이름

이닝

평균자책점

승패

탈삼진

WHIP

09로페즈

190.1

3.12

14승 5패

129

1.27

09조정훈

182.1

4.05

14승 9패

175

1.33

09윤성환

166.2

4.32

14승 5패

131

1.18

 
2009시즌은 타고투저의 시즌이었습니다. 역대 최소승수 공동다승왕 3명이 배출됐을 정도로 2009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 후보들은 2000년대 이 부문 주요 수상자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14승 투수 3명 가운데 200이닝을 채운 선수도 단 한 명도 없었고, 평균자책점과 WHIP 역시 전체적으로 떨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2009년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은 예상대로 로페즈가 거머쥐었습니다.

위에 열거된 2000년대 수상자들은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00임선동은 정민태, 김수경과 함께 한 팀에서 18승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었고, 02송진우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죠. 04배영수는 시즌 중 꼴찌까지 간 팀을 준우승에 올려놨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역대 최초로 10이닝 노히트노런의 괴력을 발휘했었죠. 06류현진은 역대 최초로 투수부문 3관왕-MVP-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하는 선수였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2000년대 최고 투수는 06류현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인으로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르는 활약을 펼친 리그 최고의 에이스가 됐기 때문이죠. 특히 정상급 투수의 척도인 180이닝 이상 + 15승 이상 + 평균자책점 2점대 이하의 기록을 모두 달성한데다 200이닝 + 200탈삼진을 기록하여 역대 최고 신인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록 리오스도 여러 시즌 좋은 활약을 보였고, 특히 07리오스 역시 류현진을 능가하는 성적을 올렸지만, 일본 진출 후 약물복용이 들통났다는 점에서 그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whip : 이닝당 출루허용수
평균자책점 = 방어율



포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박경완

0.281

40

95

7

0.419

0.615

1.034

9

03김동수

0.308

16

68

3

0.390

0.485

0.875

9

02진갑용

0.281

18

86

0

0.347

0.465

0.812

11

08강민호

0.292

19

82

2

0.365

0.485

0.850

6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정상호

0.288

12

49

0

0.365

0.481

0.846

7

09김상훈

0.230

12

65

2

0.316

0.361

0.678

5

 
2000년대 최고 포수를 따져보면 00박경완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4연타석 홈런을 앞세운 40홈런은 역대 포수 최다 홈런입니다. 40홈런 이상 기록한 토종 선수는 장종훈, 이승엽, 심정수와 함게 단 4명 밖에 없습니다.

00박경완이 OPS에 있어서 1.000을 넘었다는 것은 괴물로 한 시즌을 보냈다는 증거이며, 더구나 그의 포지션은 포수입니다. 팀은 2000년대 최고승률로 우승을 했고, 자신과 호흡을 맞춘 투수는 18승의 공동다승왕이 됐죠. 실력이든, 운이든, 복이든 역대로 이보다 나은 시즌을 보낸 포수는 한국에서 전무후무합니다.

 03김동수, 02진갑용도 팀을 우승시키며 맹활약을 했고, 08강민호도 포수로서 좋은 방망이 실력을 뽐냈지만, 00박경완을 능가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00박경완은 다음 시즌인 2001년에는 포수 최초로 20-20클럽을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역시 투수 부문처럼 2000년대 주요 수상자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09정상호와 09김상훈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우승팀 프리미엄과 타점에 있어선 김상훈이,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에서는 정상호가 각각 유리합니다. 

서로의 장단점이 수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누가 될 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가운데, 결국 김상훈이 웃었군요. 역시 우승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올 시즌 김상훈은 타율은 좋지 못했지만, 득점권 상황에서 활약만큼은 대단했습니다.

OPS : 출루율 + 장타율. 강타자 능력의 가늠하는 수치 중 하나

  

1루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2이승엽

0.323

47

126

1

0.436

0.689

1.125

4

03이승엽

0.301

56

144

7

0.428

0.699

1.127

5

06이대호

0.336

26

88

0

0.409

0.571

0.980

7

08김태균

0.324

31

92

2

0.417

0.622

1.039

2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최희섭

0.308

33

100

2

0.435

0.589

1.023

5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은 이승엽이 KBO에 있던 시절 그가 석권하던 분야였습니다. 리그를 초월하는 기록들을 양산했기 때문이죠. 단순히 기록 자체만 보면 KBO에서 이승엽을 능가할 타자는 없어 보입니다. 최연소, 최소경기, 최단기간부터 시즌 최다, 최고까지 대부분의 홈런, 타점 기록을 이승엽이 갖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06년에는 이대호가 투고타저 상황에서 타격, 홈런, 타점 모두 1위에 오르며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고, 작년에는 김태균이 30홈런 고지를 밟으며 이름값을 했죠. 

어쨌건 역대 1루수 부문에 있어서는 이승엽이 독보적이긴 합니다만, 프로 프로 최초로 30홈런 돌파 + 프로 최초 20-20클럽의 김성한, 프로 최초로 40홈런 달성한 장종훈을 빼놓으면 안 되죠.

2009년에는 최희섭의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정상급 강타자의 조건인 3할 타율 + 30홈런 + 100타점을 모두 이루며 기아의 4번타자로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강타자의 조건인 타율 3할 + 출루율 4할 + 장타율 5할도 만족시켰습니다. 국내 복귀 후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끝에 결국 이름값을 하네요. 박수가 아깝지 않은 선수입니다.

 

2루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박종호

0.340

10

58

9

0.428

0.490

0.918

16

09정근우

0.350

9

59

53

0.437

0.483

0.920

16

 
2009년 2루수 골든글러브 부문은 정근우가 수상했습니다. 09신명철이 2루수로서 20-20클럽에 가입한 것 역시 대단하긴 하지만, 09정근우의 기록을 보면 프로야구 역대를 두고 이야기할 만큼 월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0.350의 타율이면 타격왕, 도루가 53개면 웬만한 시즌 도루왕에 오를 만큼 훌륭한 기록을 쏟아냈기 때문이죠. 그리고 준우승한 소속팀 SK에서 타선의 핵심타자로서 제 몫을 다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올 시즌 SK타선의 에이스였죠.

09정근우의 이런 기록은 타격왕을 차지한 00박종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단일 시즌 기록만 따져보면 00박종호를 능가했다고 봅니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정근우는 김성래, 강기웅, 박정태, 박종호과 같은 기라성 같은 2루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유격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박진만

0.288

15

58

0

0.350

0.486

0.836

15

01박진만

0.300

22

63

9

0.380

0.507

0.886

25

04박진만

0.286

17

69

6

0.365

0.445

0.810

14

02브리또

0.283

25

90

1

0.355

0.499

0.854

22

03홍세완

0.290

22

100

7

0.347

0.483

0.830

13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강정호

0.286

23

81

3

0.349

0.508

0.857

15

09손시헌

0.289

11

59

6

0.369

0.437

0.806

10

09나주환

0.288

15

65

21

0.364

0.440

0.804

15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유격수' 포지션만 떠올리면 박진만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대표로서의 활약과 유격수의 수비를 따져봐도 현역 최고 유격수는 역시 박진만이죠.

그런데 2000년대 유격수 부문은 단일시즌만 놓고 보면 누가 최고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골든글러브는 외국처럼 수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10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공격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컨데 03홍세완은 장종훈 이후 토종 유격수로서 20홈런 90타점 이상을 기록했고, 02브리또는 공수를 겸비한 25홈런 90타점의 성적으로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런 한 편으로 유격수는 전통적으로 수비가 중요시 되는 분야입니다. 포수와 함께 수비라는 의미를 생각하며 평가하는 자리가 유격수죠.

2009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은 나주환, 손시헌, 강정호의 경합 속에 실책이 가장 적었던 손시헌 선수가 수상했습니다.

강정호는 유격수로서 굉장한 타격을 선보였는데, 아직 20대 초반이니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2000년대 최고 유격수 중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저는 04박진만을 찍겠습니다. 골든글러브는 정규시즌의 기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도 일정 부분 고려했구요.

또 한 가지.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가 노히트노런하던 경기에서 현대가 패하지 않았던 것은 김한수의 중전적시타성 타구를 박진만이 다이빙캐치해서 아웃시킨 것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죠. 사소해보이지만 유격수라는 자리를 깨우쳐주는 수비였습니다.

 

3루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김동주

0.339

31

106

5

0.414

0.603

1.017

17

09김상현

0.315

36

127

7

0.379

0.632

1.011

21

 
2009년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은 시상식전부터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 주인공은 바로 MVP 김상현입니다. 2009년 최고의 3루수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성적은 2000년대 최고 3루수에 오를 만큼 엄청난 수준이죠. 나아가서 역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3루수의 기록 가운데 최고의 성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00김동주와 견줘봐도 전혀 떨어지지 않은 성적입니다. 다만 김상현이 역대 최고의 3루수로 불리기 위해서는 꾸준한 성적과 수비 보강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비록 위의 기록에는 빠져있지만, 2000년대 3루수를 논하는데 있어서 김한수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해태-LG에서 다시 기아로 이적하면서 설움 많은 야구인생을 보내던 중 정상의 자리에 차지했으니,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 라는 말은 김상현에게 써야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야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이병규

0.323

18

99

14

0.383

0.482

0.860

2

00박재홍

0.309

32

115

30

0.388

0.589

0.977

2

00송지만

0.338

32

92

20

0.409

0.622

1.031

5

01정수근

0.306

2

53

52

0.395

0.403

0.798

6

03양준혁

0.329

33

92

2

0.395

0.614

1.009

6

03심정수

0.335

53

142

6

0.478

0.720

1.197

5

03이종범

0.315

20

61

50

0.389

0.515

0.904

4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박용택

0.372

18

74

22

0.418

0.582

0.999

3

09김현수

0.357

23

104

6

0.448

0.589

1.037

1

09강봉규

0.310

20

78

20

0.405

0.506

0.911

4

09이택근

0.290

15

66

43

0.408

0.467

0.875

5

외야수 부문은 내야수 각 부문에 비해서 골든글러브 수상 자격에 있어서 타격 성적이 좌우하는 바가 큽니다. 2009년은 타고투저의 성향이 짙었지만 홈런보다는 타율에 시선이 집중되었던 시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0.370대 타율의 박용택이 등장하는 바람에 역대 최초로 2년 연속 타율 0.350대 타율을 기록한 김현수가 타격왕을 수상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2009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은 09박용택, 09김현수의 양강체제 속에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20-20클럽의 09강봉규, 타율 3할 + 43도루의 09이택근, 용병 클락의 3파전이 예상됐는데요. 결국 마지막 한 자리는 이택근의 몫이 됐습니다.

09박용택, 09김현수는 2000년대 최고의 외야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2000년대 최고 외야수 3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03심정수, 00박재홍을 먼저 선택하고 03이종범, 00송지만, 00이병규 중 한 선수를 지목하겠습니다.



사실 선정된 선수 하나 하나가 대물급 선수들이라 평가내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몬스터 시즌에 해당되는 선수를 두고 누가 낫다 못하다 평가내리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 있기 때문이죠.

대체로 외야수 자리에는 테이블 세터급이든 중심타자급이든 타선의 중추가 되는 선수들이 배치되는데요. 아무래도 펀치력 있고 타점을 휩쓸어줄 수 있는 선수가 높이 평가받습니다. 야구의 공격은 결국 루를 얼마나 먹고 가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출루율, 장타율, OPS를 따지는 것이겠죠.

다만 이종범, 이병규와 같이 다재다능한 선수들이나 정수근, 이대형과 같은 쌕쌕이류 외야수들은 거포형 외야수와는 다른 활약을 펼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선수들이 1~2명 포진되면 상대팀은 괴롭습니다.

폭발적인 장타력, 뛰어난 도루능력, 정확한 타격능력 등 타자로서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지 않으면 높이 평가받기 어려운 자리가 외야수입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수비 능력도 외야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지명타자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우즈

0.315

39

111

4

0.414

0.605

1.020

2

02마해영

0.323

33

116

2

0.386

0.592

0.978

1

03김동주

0.342

23

89

3

0.450

0.581

1.031

5

07양준혁

0.337

22

72

20

0.456

0.563

1.019

1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홍성흔

0.371

12

64

9

0.435

0.533

0.968

0

09페타지

0.332

26

100

2

0.468

0.575

1.043

7

 2000년대 최고의 지명타자라고 하면 우즈와 마해영으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역대 최고의 용병 우즈와 2002년 한국시리즈 MVP 마해영. 그 가운데 00우즈가 좀 더 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20-20클럽 + 타격 2위를 달성한 07양준혁도 대단했고, 타격왕을 차지한 03김동주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지명타자로 기억합니다.

비록 타고투저의 성격이 짙었던 2009시즌이었지만, 개개인의 홈런수 증가보다 리그 전체의 홈런수 증가가 더 눈에 띄던 시즌이었죠. 때문에 소수 타자의 엄청난 홈런 양산이 이뤄졌다기 보다는 20홈런급 타자가 대거 출연한 것이 2009시즌의 특징이었습니다.

또, 앞서 언급한 바처럼 장타보단 타율에 초점이 맞춰진 시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언제 다시 3할7푼대 타자끼리 타격왕을 다투는 경우가 나올까요? 또한 언제 3할5푼 타율 이상 타자가 4명씩이나 나오는 일이 있을까요?

 시즌 막판의 '뜨거운 감자'였던 타격왕 논쟁 속에 홍성흔은 비록 2인자가 됐지만, 2009년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함으로써 2년 연속 타격 2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성적으로 보면 09페타지니도 수상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만, 타격 2위의 홍성흔에게 표가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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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09.12.17 0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축하합니다! 짝짝짝!
    내년에도 올해처럼 멋진 경기 보여주세요!
    올해 프로야구 최고였다능! >.<

  2. 콩콩 2009.12.19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놓고 보니까능 2003년에는 심정수가 대단해긴했네요.
    완전 날라다녔다고 표현해야 할까봐요.
    이승엽도 무시무시했든걸로 아는데 53홈런 142타점이라니
    엄청난 활약이었던것같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2.19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03년 심정수는 역대 최강급이죠.
      물론 이승엽도 최고였지만.
      2003년만큼은 ~율에는 심정수가 우위였고
      ~수에는 이승엽이 앞섰죠.

      따라서 출루율, 장타율 같은 건 심정수가 우위
      홈런, 타점 같은 건 이승엽이 우위.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3) >

이제 마지막 회인 1997년이군요.

3. 1997년 한국시리즈

1997년 정규시즌 5대 선수
홈런왕 포함 3관왕에 최연소 MVP 이승엽
다승왕 포함 투수 부문 3관왕 김현욱
타격왕 포함 타자 부문 3관왕 김기태
구원왕 야생마 이상훈
그리고 30-30클럽에 도루왕을 기록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1997년 한국시리즈는 말 그대로
이종범으로 시작해서 이종범으로 끝난, 이종범을 위한 시리즈였습니다.

설명 전에 잠시 이례적인 일이 있었는데요.
한국시리즈 1차전은 정규시즌 우승팀의 홈인 광주가 아니라 잠실에서 먼저 열렸습니다.

당시 규정이 이상했기 때문인데요.

서울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경우, 1,2차전은 잠실에서 치른다.

마침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LG의 연고가 서울(잠실)이었거든요.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잠실은 해태에겐 제 2의 홈이라고 할 만큼 팬들이 많이 찾아오셨거든요.

자, 그럼 97한국시리즈의 이종범을 찾아 떠나볼까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1차전 - 기선 제압의 선봉에 서다 ]

1차전 초반부터 이종범의 맹활약은 시작됐습니다.

3회 2사에 볼넷으로 출루한 이종범은 김용수의 예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2루를 훔쳤고
2번타자 장성호의 볼넷 때 포수 김동수가 지나치게 이종범을 의식하다
공을 빠트려(패스트볼) 3루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렇게 배터리가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LG는
최훈재에게 적시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주고 맙니다.

이후 LG의 반격으로 1:1 동점이 된 5회 2사에 등장한 이종범,
김용수의 변화구 실투를 받아쳐 좌중간으로 역전 아치를 그려냈죠.
당시 1루를 향하면서 두 팔 벌려 스스로 감격한 모습, 기억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장수들끼리 1:1 대결을 펼친 뒤,
그 결과에 따라 전투의 승부가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버리죠.

그 당시 해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봉에 선 이종범이 공격의 물꼬를 터주자 나머지 선수들도 덩달아 힘이 난 듯
너도나도 방망이가 터지기 시작했고 결국 6:1로 1차전을 잡아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해태는 9번 김종국을 제외한 선발타자 전원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이종범은 수비에서도 2루수 김종국과 함께 병살타 3개를 이끌어내며
키스톤 콤비로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3차전 - 결정적인 한 방, 기울어진 시리즈 ]

'비수를 꽂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보여준 3차전이었습니다.

3차전은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해태는 조계현, 강태원으로, LG는 손혁, 김기범, 차명석으로 짠물투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1로 동점이던 7회말 1사 1루 상황,
LG는 간판투수이자 마무리인 이상훈 카드를 꺼내듭니다.
이상훈과 이종범... 두 거물의 맞대결이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펼쳐진 것이었죠.

이 승부에서 이기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전체 판도를 좌우할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이종범이 역전 결승 2점홈런으로 사실상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버렸죠.
6회 전타석에서 차명석에게 뽑아낸 동점홈런까지 포함, 연타석홈런 기록까지 달성했습니다.

* 한국시리즈 연타석홈런 - 한국시리즈 3차전 (1997년 10월 22일, 역대 3번째)
  기존 기록자들 - 김성한(1989년), 이건열(1991년)

*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3개 (당시 기준으로 타이)
  당시 기존 기록자들 - 김유동(1982년), 김성래(1986년)
  현재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4개, 우즈(2001년)


97년 한국시리즈 이종범의 공을 높이 살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상 시리즈의 맥이 되는 1차전, 3차전을 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두 번째 엘지가 자랑하던 주요 투수력을 홈런포로 모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당시 에이스-핵심불펜-마무리이던 김용수, 차명석, 이상훈을 각각 차례로 말이죠.
(1차전 - 김용수, 3차전 - 차명석, 이상훈)

* 1997년 LG 트윈스 주요 투수
97김용수 : 177이닝 12승 투수로 11승을 거둔 임선동과 함께 원투펀치.
97차명석 : 기교파 투수이긴 했지만 당시 정현욱, 전병두와 같은 핵심 불펜투수로 구원 11승
97이상훈 : 47세이브포인트로 당시 시즌 세이브포인트 기록을 세움
(세이프포인트 = 구원승 + 세이브, 2004년부터는 세이브만 계산함)

→ 당시 LG는 10승 투수가 김용수, 임선동, 차명석, 이상훈으로 4명이었습니다.


이미 삼성과 5차전을 치르면서 지친 LG 트윈스로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투수력이 일거에 무너지는 바람에
3차전 이후 내리 연패를 당하며 시리즈가 끝나고 맙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5차전 - 유종의 미 ]

드디어 왕좌에 등극한 5차전이었습니다.


4차전 승리로 사실상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마지막 마침표 하나를 찍을 때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죠.

* 한국시리즈 최다도루 - 13개 (93년 7개, 96년 4개, 97년 2개로 타이)
  기존 기록자 - 이순철 13개

0:1로 뒤진 3회에 김종국이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이종범은 안타로 터뜨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일단 이종범이 나간다는 건 상대팀에겐 매우 불안한 실점 위기임을 뜻했죠.

실제로 LG에서 한국시리즈의 유일한 승리투수였던 임선동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장성호 내야 땅볼, 최훈재의 2루타 등으로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LG는 여기에서 빼앗긴 승기를 되돌리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끓었죠.

시리즈 내내 공격, 주루 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이종범은
5차전 승리를 통해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MVP에 오릅니다.
팀 동료 이대진과의 경쟁에서 총 45표 중 33표를 차지했습니다.


< 에피소드 >
한국시리즈 5차전의 승리투수는 故 김상진 투수였습니다.
그 당시 역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위암으로 너무 일찍 야구팬 곁을 떠나버렸죠.
1999년 6월 10일, 만 22세의 나이로.

1997년 한국시리즈를 볼 때마다 이종범의 맹활약, 이상훈의 아픔, 故 김상진의 역투
이 세 가지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더군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그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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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번뜩맨 2009.10.2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선수군요.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0.20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는 잘 모르지만.. 이종범 선수는 알아요!
    아버지가 해태타이거즈 팬. 지금은 기아..
    초등학교때는 화창한 토요일에 학교 다녀오면 2시부터 늘~~ 티비에서 야구만 해서 좀 싫었었는데 ㅜㅜ
    어느정도 크면서 박찬호 선수도 알게되고, 최희섭 선수도 알게되고,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니까 잘은 몰라도 야구도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가장 안타까운건, 저희 동네 야구팀이 없다는거 흑흑 ㅜ

  3. ㅎㅎㅎ 2009.11.26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 제일 잘하는 사람은 1번타자인줄 알았던 시절....그립습니다.

  4. 박종욱 2010.02.03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좋네요 잘보고갑니다 퍼갈게여